재택근무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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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스타트업들이 재택근무를 복지후생 중 하나로 내세우고 채용을 시도한다. 스타트업인데 재택근무를 안 한다니 말이 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고, 재택근무 안 하는 스타트업은 꼰대 스타트업이라고 싫어하는 경우도 봤다.

이름만 스타트업인 꼰대 회사 같아요

욕 먹을건 알지만, 꼰대 소리 들을 각오하고 우리는 재택근무, 혹은 리모트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많은 회사들이 반강제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고집스레 재택근무를 안 하고 있다. (물론 직원들의 건강을 외면하는건 아니다. 불가피한 순간을 대비해서 재택근무를 위한 셋팅을 다 갖춰놓고 있다.)

왜?

재택근무를 위해서는 크게 3가지의 비용이 들어간다

  • 커뮤니케이션 보조 설비
  • 커뮤니케이션 비용
  • 감시 비용

국내외의 여러 커뮤니티에서 재택근무해도 아무 상관없는데 진작부터 했어야하는걸 왜 이제와서 이렇게 반강제로 시행하냐, 회사들이 못되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많이 봤다. (왠지 재택근무 솔루션 팔아먹으려는 회사들의 바이럴 마케팅이 아닐까 의심되지만…)

아마 처음 며칠은 괜찮을 것이다. 원래 하던 일이 있고, 루틴이 있으니까 그대로 진행하기만 하면 되는 회사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 보조 설비 비용 얼마만 지불하면 그만이다. 채팅 앱, 화상회의 서비스도 좋은게 널려있고, 키보드로 다다다다닥 치면서 이야기하는거 사실 사무실에서도 하던거잖아? 언뜻보면 사무실에 엄청난 비용을 쓰는게 바보처럼 보인다. 사무실 비용 아껴, 출퇴근에 시간 낭비 없어, 옷 차려입을 필요도 없고, 왜 이렇게 좋은 리모트를 안 하지?

(Source: 서울경제)

커뮤니케이션 비용

키보드로 대화치는게 말하는 것보다 더 빠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읽는 속도가 듣는 속도보다 빠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말 보다 키보드로 자기 의사 전달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람이 손짓 발짓을 써서 하는 대화, 같은 화면을 보며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하는 대화를 흉내내는 건 가능하지 몰라도, 완벽하게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옆 자리에 앉아있으면 5분 남짓 이야기하고 끝날 내용이었는데, 채팅창으로,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이야기하려면 답변 기다리고, 시간 정하고, 내 손짓 발짓을 좀 더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을 찾아서 보내주고 등등 엄청난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Source: Pabii)

실제로 지불한 커뮤니케이션 비용

디자인 업무 하시던 분이 가족 사정으로 해외에 장기간 계셔야되는 상황이었는데, 사람 뽑으려니 연봉만 많이 달라고하고 실력있는 사람 찾기도 어렵고해서, 디자이너 분과 재택근무 하기로 합의를 봤다. 처음 몇 달간은 해 놨던 업무의 연장선상이기도 했고, “그 때 이랬잖아요”하면 굳이 손짓 발짓을 안 써도 되니까 큰 불편을 느끼질 못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나니 “그 때 이렇게 했던 거”를 다 까먹더라. 파일을 찾아서 보내줘도 기억이 안 나니까 채팅창의 대화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화상회의를 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질 수 밖에 없다. 글자는 타이핑도 늦고, 전달된 후 이해되는 속도도 느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나니 손짓 발짓을 화상회의 중간에 해야되는데, 잘 안 보인단다. 밝기를 조절하고, 카메라를 좋은걸로 바꾸고, 그렇게 버텨봤다.

그 와중에도 사무실의 A, B, C, D, E와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A가 재택근무자 Z에게 전달하는 독박을 쓰다보니 A가 지친다고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A는 오래전부터 Z더러 사무실에 나와라고 이야기를 해야되는거 아니냐는 불평을 늘어놨고, A가 전달못한 내용을 Z가 안 해 놓으면 B, C, D, E가 피해를 입었다는 불평이 터져나왔다.

심지어 신규 입사자 K는 Z와 얼굴 본 적도 없으니 대화에 선뜻 끼여들기가 힘들었다. A한테 대신 전달해달라고 할 수 밖에 없고, A는 본의아니게 회의 내용 전달 업무를 맡게 됐다.

(Source: Lucidchart)

비용 정리

우리가 지불한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정리해보면

  • Z가 회의 보고서를 읽고 이해하는데 들어간 시간
  • Z가 잘못 이해했을 때 다시 업무해야하는데 들어간 시간
  • Z에게 전달하려고 회의 보고서를 만드는데 들어간 A의 노동력
  • A가 제대로 전달했는지 가끔씩 확인하는 B, C, D, E의 시간
  • K가 디자인이 필요할 때 A에게 전달하고, A가 다시 Z에게 전달하는 시간

같은 종류의 시간 비용이 들었다.

A의 한 달 급여가 1,000만원이라면 회의록 작성하고 전달하는데 업무 시간의 30%를 썼다고 가정하면 300만원치의 급여가 낭비된 셈이다. 거기다 Z가 커뮤니케이션 실패로 일을 제대로 못해서 다시한다면? 사무실에 있었으면 뒤에서 모니터만 보고 바로 스톱을 시켰을텐데, 재택근무를 하면 결과물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일이 전체 업무 시간의 30% 정도를 차지한다고 생각해보자.

지극히 자본의 논리를 들이대면 재택근무라는 특혜를 받는 직원은 자기 급여의 60%를 반납해야 말이 된다. 거기다 A가 독박으로 회의 보고서 쓰면서 자기 업무를 못하는데 따른 업무 지체 비용, 개인적인 불만 등을 고려하면 Z의 재택근무에 급여를 지급하는게 맞냐는 생각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비용을 몇 달 지불하고서 결국엔 재택근무를 포기했다. 그 디자이너 분의 실력은 뛰어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재택근무를 지원해줄 수 없는 회사가 됐다.

(Source: Indrajeet)

커뮤니케이션 비용 최소화가 가능한 경우

똑같은 슬라이드로 매번 같은 내용만 반복하는 강의라면 아마 사이버 강의로 충분히 대체될 것이다. 머리를 쥐어짜는 고민을 계속해야 하는 강의,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직접 만져야하는 실험 강의 같은 몇몇 수업을 빼면 많은 강의들이 슬라이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도 사이버 강의가 확산되기는 했다. 어차피 교실 안에 있어도 딴 짓하는 애들은 딴 짓 한다 ㅋㅋ

말을 바꾸면, 머리를 쥐어짜는 고민을 하다가 중간중간 선생-학생간 대화가 실시간으로 이어지며 아이디어가 왔다갔다 해야하는 강의, 오감으로 겪어야하는 강의는 대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똑같은 맥락에서 채팅과 화상회의만으로 충분한 회사 업무는 항상 같은 루틴인 업무, 담당자가 다른 사람과 대화없이 혼자서 뚝딱뚝딱 만드는데 일절 대화가 필요하지 않는 업무로 국한된다.

(Source: Republic)

감시비용 (Monitoring cost)

커뮤니케이션에 비용이 들어갈 이유가 없는 사례라고 해도, 또 다른 비용이 존재한다. 바로 감시비용이다.

사무실에 앉아있으면서 딴 일 하는 사람도 많지 않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눈 옆에 있을 때 감시하는건 자세 한번 비틀면 가능하지만, 재택근무에 대한 감시는 완전히 다른 인센티브 구조에 대한 고민을 해야한다.

몇 시까지 얼마의 업무를 진행한다, 몇 일까지 어디까지 완성한다, 결과물이 잘못되어서 다른 부서에 피해를 주면 해고로 끝나는게 아니라 손해배상을 해야한다 같은 종류의 노예 계약보다 더 심한 요구사항이 있다면 모를까, 인센티브 구조는 결국엔 주인-대리인 문제를 야기할 수 밖에 없다.

인센티브 구조 만드는 것도 고민을 담아야하고, 결과물에 대한 평가 방식도 고민을 담아야하는데, 결국엔 주인-대리인 문제가 생긴다면 그 비용은 얼마나 큰 비용일까?

출근해서 일하는 모습을 “감시당하는”게 그나마 주인-대리인 문제에 대한 비용절감하는 해결책이기 때문에 회사들이 사무실을 임대해서 운영하는거다.

(Source: Investopedia)

글로벌 회사들이 보여주는 선례

글로벌 회사들을 다니면 보통 1달 혹은 3달에 한번 정도 본사의 고위직이 지역 사무실에 “미팅 목적으로” 찾아온다. 서울 사무실에 일하고 있으면 홍콩에서 뻔질나게 사람들이 찾아오고, 홍콩 사무실에 있다보면 뉴욕, 런던 같은 본사 급의 대형 사무실에서 하루에도 몇 명씩 출장오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본사 직원 입장에서는 지사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눈 앞에서 일하고 있질 않아서 채팅으로, 화상회의로만 만나야하니 재택근무와 크게 다를바가 없다.

주기적으로 얼굴을 보고 찾아와서 만나며 끈을 놓지 않는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기가 방문했을 때만 일하고 있다면 티가 날테니까.

이미 그 사이즈의 회사가 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최소화하고, 감시비용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를 만들어놨을텐데도, 그래도 부족해서 수시로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대륙간 비행기 한번 태우면, 호텔 제공해주면 몇 백만원이 그냥 깨지는데 필요없다면 굳이 교통비용, 체류비용을 지불하려들까?

(Source: Aleteia)

나가며 – 재택근무의 한계

가까이 지내는 VC 친구 하나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덕분에 앞으로는 재택근무가 늘어나서 사무실 임대료가 떨어지지 않을까는 질문을 하더라. 회사들이 우르르 망해서 사무실 임대료가 떨어질 것 같기는한데, 재택근무가 늘어나서 사무실 임대료가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답해줬다.

자기 회사 건물 내에 확진자가 발생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재택근무를 선택했던 많은 기업들이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재택근무를 포기하고 있다. 일시해고가 자유로운 영미권 기업들은 대규모 감원을 했다. 모두들 위에서 예시를 들었던 우리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경험치 0이었던 스타트업이 늦게 깨달은거겠지.

어느 스타트업에서 개발자 뽑으려면 재택근무라는 당근을 줘야한다고 끝까지 고집을 피우면서 정작 커뮤니케이션 비용과 감시 비용에 대한 고려는 안 하는 경우를 겪었었다. 니네는 회사 지분을 10%씩 들고 있으니 목숨걸고 일하는거고, 채용되는 사람들에게 니네는 쩌리 스타트업에 불과한데 굳이 그렇게 집중력을 끌어올려서 일하겠냐고 핀잔을 줬는데도 듣질 않더라. 실험해봐야된다고 끝까지 고집 피우는걸 보고 딱하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이런 상식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봐야 안다는 인간들이 회사를 운영한다니…

IBM 같은 유래 깊은 글로벌 회사도 사무실 비용 줄이겠다고 재택근무 시작해서 무려 19분기 연속 적자에 허우적거리다가 결국은 재택근무를 포기했던 사례도 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재택근무 뿐만 아니라 외주도 안 주는 회사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