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블록체인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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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 어느 대기업 부장님께 회사 사업 모델을 설명 드리는 자리가 있었다.  Pabii 사업 모델에 주어진 도전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스마트폰의 OS가 막아놓은 일부 정보를 불법적이지 않게 받아오는 개발자의 도전, 둘째는 그 데이터를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가공처리한 후에도 타게팅 광고가 돌아가는 알고리즘에 대한 도전, 셋째는 우리 앱을 많이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도전이다.

그동안 만나뵈었던 대기업 부장님과는 다르게 굉장히 뛰어난 직관으로 사업 모델을 빠르게 이해하셔서 참 반가웠는데, 앱 설치 유도하는 방법이 Pabii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매달 5,000원 돌려준다”는 말이냐고 질문을 하시더라. 아무리 작은 스타트업이라도 관계자랑 만나는 자리니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오신게 느껴져서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하긴, 이렇게 작은 일에도 필요한 리서치를 다 하고 나타나는 비지니스 마인드를 갖춘 분이니까 대기업에서 부장까지 승진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블로그 글 하나 대충 읽고 메일이나 댓글 쓰는 사람들과 참 대비되지 않나?)

따라나오는 질문이, 그럼 혹시 코인으로 보상하는거냐고 질문하시던데, 기존의 포인트, 사이버 머니같은 방식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굳이 코인으로 처리하려고 속도 & 확장성에 고민을 많이 담아야하는 블록체인에 의존할 필요가 없지않냐고 말씀드렸다.

재직하시는 대기업에서도 블록체인, 암호화폐에 대한 논의가 여러번 나왔는데, 굳이 블록체인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구현이 가능한 사업 모델에 속도와 확장성, 장기간 관리에 이슈가 있는 블록체인을 강제로 도입할 필요가 있냐는 결론을 내리셨다는 말씀을 해 주시더라.

 

굳이 블록체인이어야 할까?

비트코인 가격 폭등 때문에 관심 집중의 대상이 되었다가, 버블 폭락 이후 코인 매니악들이 시장을 떠나면서 자연스레 Smart Contract로 관심이 이동하게 되었다. 더불어 블록체인으로 코인을 찍어내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블록체인이 뒤에서 작동하고 있는 사업모델이 나와야한다는 관점으로 시장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걸 감지할 수 있다.

요컨대, 블록체인”으로도” 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라, 블록체인”이어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찾아내야 한다는게 요즘 트렌드라는데, 당장 눈에 띄는 사업은 2015년말에 필자가 처음 실리콘밸리에서 Job Interview를 다니던 무렵에 봤던 “은행 송금” 관련 서비스들이다.  다만 실물 화폐보다는 가상 화폐 송금쪽으로 서비스가 더 집중되어 있다. (ex. 비트베리) 더 나아가서 가상 화폐로 실물 상품을 결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서비스도 나온다. (ex. 테라)

근데, 이런 서비스들은 지금까지 나와있는 “온라인 머니” or “포인트”들로도 다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도대체 블록체인으로 만들어놓은 플랫폼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서비스 사용자 입장에서 뭐가 다를까? 실물 자산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해 주려면 실물 판매측에서는 현금으로 보상을 받기를 원할텐데, 또 거래량이 늘어나면 더 많은 코인을 찍어내야하고, 더더욱 실물 화폐로 된 준비금을 늘려야할텐데, 이런 간단한 경제학의 논리는 인지를 하고 있는걸까? 도대체 준비금은 어디서 더 채워넣을려고 하는거지? 더 코인을 발행해서 신규 자금을 모으겠다면, 발행 코인은 늘어나는데 준비금 관리에 쓰이는 인건비, 관리비 등의 현금 유출 때문에 준비금은 계속 감소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정부 기관처럼 무슨 세금을 거둬들일 것도 아니고,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사람들이 현금 유입될 구석은 다 마련해놓고 저런 서비스를 내놓는 걸까?

 

탈중앙화를 포기하는 블록체인 서비스들

카카오의 블록체인 연구개발 자회사인 그라운드X를 이끌고 있는 한재선 대표님이 카이스트에서 박사하시던 시절에 했던 프로젝트들을 보면 Byzantine Generals’ Problem (속칭 BGP)를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신 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다른 글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블록체인이 탈중앙화를 선택한 탓에 검증이라는 걸 네트워크 구성원 모두에게 의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구조다보니 BGP를 풀어내는 방식이 결국 블록체인의 검증 작업과 일치하는 측면이 있다. 고민하셨던 부분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지만, (짝퉁) Game Theorist 입장에서 그 문제를 Incentive 문제로 풀려고하지않고, Mesh Network를 포기하는 형태로 접근하는게 너무 공학도스럽다고 슬쩍 어깃장을 놨던 기억이 난다.

스타트업들 투자하는 VC를 거쳐서, 국내 굴지의 IT회사 블록체인 팀 전체를 이끌고 계신 그 분의 요즘 언론 인터뷰를 보면, 코인 투기 이야기는 그만하고, 실제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블록체인 앱이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게 보인다. 참고로 블록체인을 활용한다는 앱들의 공식적인 명칭은 탈중앙화 앱 (Decentralized Application, DApp)이다.

카카오에서 내년에 출시한다는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 Klaytn)을 보면, 속도를 위해서 탈중앙화 시스템, 즉 Mesh Network을 포기하겠다는게 확연히 드러난다.

한 대표는 현 시점에서 실사용되는 앱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블록체인이 직면한 느린 처리 속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파이널리티(최종완결성)가 부족하면 크리티컬한 서비스를 담기 힘들다”며 “클레이튼은 이를 1초 안팎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비트코인 블록체인에서는 하나의 거래(transaction)이 성사되는데 10분이 걸리며, 거래 성사 이후에도 5개의 후속 블록생성 작업이 이뤄져야 되돌릴 수 없이 거래가 최종 완결된다. 하나의 거래가 최종완결 되려면 비트코인의 경우 1시간이 걸리는 셈인데, 클레이튼에서는 이를 1초 안팎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이를 위해 클레이튼의 운영방식에서 탈중앙화라는 특징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속도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한 대표는 “노드를 하나 추가한다고 성능이 개선되지는 않고 가장 좋지 않은 노드에 성능이 고정되어버린다”라며 “클레이튼은 서로 다른 서비스를 일종의 샤딩인 서비스체인으로 분류해 병렬화하고 확장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런 맥락에서 “탈중앙화는 툴(tool)이지 목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경제, 2018년 9월 13일 기사)

구체적인 설계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아마도 Extended Star Network를 구성해서 결제 처리는 중앙화된 구조에서 진행하고, 사후에 정보만 중앙 밖에 있는 Node들에 전해주는 방식으로 블록체인 시스템을 운영할 것 같다. 서버간 정보 전송 속도라는 하드웨어적인 제한이 있는 상태에서 기술적으로 저 문제를 처리한다고 했을 때 다른 방법은 보이질 않는데, 나중에 시스템 설계가 공개되면 관심을 갖고 읽어보고 싶어지긴 한다.

만약 필자의 짐작이 맞다면, 블록체인 서비스, DApp이라고 이름은 달아놨지만 사실은 중앙집권화된 데이터 처리방식으로 앱을 만들고, 코인이라는 것도 중앙화된 구조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블록 생성에 대한 대가로 지불될 것 같아 보인다.

결국, 이름만 바꾸고, 처리방식만 살짝 바꿨지, 사실은 예전의 포인트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추가: Pabii 수업을 몇번씩이나 듣고 가신 보안 전문가 분에 따르면, Private Blockchain이라고, 신뢰기관(Trust)를 여러개 두는 방식으로 해결한다는데, 결국은 “탈”중앙화를 포기하고 중앙을 여러개 두는 방식으로 실제 업무에 적용되는 타협점을 찾았다는 뜻이다. 암호처리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러느니 차라리 “중앙화”된 시스템에서 암호 고도화를 시키는 쪽이 훨씬 더 나을 것 같단다. – 김승재님 감사드립니다)

 

포인트 시스템 vs. 블록체인 방식의 가상화폐 – 1.세금 & 2.거래소

Pabii앱을 설치해 Pabii에 더 많은 유저 데이터를 주는 분께 더 많은 보상을 돌려주는 보상형 광고 서비스를 설계하면서, 포인트 시스템을 운영할 때 사용자에게 돌려줄 수 있는 보상에 대한 여러가지 법적 제약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장 일정 금액 이상의 보상을 제공하면 소득세를 내야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코인”으로 보상을 받으면, 그래서 그 코인으로 다른 실물 상품을 구매해도 현금 소득으로 잡히질 않았기 때문에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성인물 스타트업인 스팽크체인은 방송하는 BJ의 컨텐츠가 19금인 경우인데, 모델들이 스팽크체인에서 훨씬 더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점을 들어 홍보를 한다. 다른 서비스들은 수수료를 30%, 40%씩 떼어가는데, 스팽크체인은 수수료가 5%란다. 거기다 수익을 전액 스팽크 코인으로 돌려주는데, 이 중 일부를 이용해 실물 상품을 구매하는데 활용한다는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저렇게 돈을 번 모델들은 그 코인으로 집세나 공과금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데, 만약 실물 화폐로 전환되는데 소득세를 걷게되면 과연 지금처럼 고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수수료를 5%만 떼어가도 회사가 유지될 수 있게 될까?

지금은 코인 구매하는 순간 모두 회사 수익으로 잡히고, 그 코인이 현금으로 환원될 때만 회사 지출로 잡는데 (보통은 안 해주지 않나…), 정부가 추적하고 세금을 매기려고하면 모델들에게 돌려주는 95%의 코인이 회사 지출로 잡혀야 한다. 최초 코인 판매할 때 거래 비용, 모델에게 지급하는 코인을 빼고나면 5% 수수료만 받다가는 적자가 생길게 뻔하다. (괜히 다른 서비스들이 수수료를 30%, ,40%씩 떼어가는게 아니다)

소득세를 비롯한 세제상의 제약, 법적인 제약과 더불어 포인트 시스템과 블록체인 방식의 가상화폐간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코인 거래소의 존재 유무다. 내가 번 코인을 실물 화폐로 바꾸기 위해서 거래소를 활용해야하기 때문이다. (발행한 회사들이 현금화 해주질 않으니까ㅋ) 근데, 거래소에서 코인 가격이 너무 많이 출렁거리는 탓에 얼마전 실리콘밸리에서는 StableCoin이라는, 일종의 헷지 상품 형태의 코인마저 출시되었다. 금융시장으로 치면 가치를 안전하게 보장해주는 금괴 같은 상품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은데, 가치보장해주겠다던 StableCoin의 가격이 대폭락했던 탓에 큰 파장이 있었다.(The Economist지 기사 참조)

일반인이 주식거래로 번 소득에 바로 소득세를 적용하겠다고 말만 흘러나와도 주가는 대폭락하고, 거래량이 급감한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에도 분명히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회계사 분들께 질문한다. 사이버 머니나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나 경제적 실체가 위와 같다면, 발행한 회사 입장에서는 부채 계정 중 하나인 이연 수익이나 무담보 채권 (Non-collateral debt)으로 보는게 맞지 않나? 일단 경제적 실체는 사이버 머니와 거의 같으니까 이연 수익이 맞을 것 같고, 회사가 당장 현금화 주질 않고 거래소가 존재하니까, 주식만 거래소 상장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채권도 거래소에서 거래되긴 되니까. (싱가폴 채권 거래소 참조. 물론 Off-the-run이면 거래하기 힘들긴 하겠지만)

근데 “블록체인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이걸 왜 주식발행처럼 자본금 계정에 포함시키려고 하는거지? 왜 암호화폐 발행해놓고 “자본금을 조달”했다고 하는거지? 그냥 채권발행 안 하고 돈 빌린거랑 똑같은거 아닌가?

 

(가상)화폐 생태계 조성

카카오의 클레이튼, 라인의 링크체인, 두나무의 루니버스 등 최근 디앱 개발에 필요한 네트워크 노드부터 코인발행까지 차근차근 메인넷 설계를 하고 있는 서비스들을 보면 우선 업무 협조를 할 회사들 리스트를 늘려서 내부적인 가상화폐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근데, 이걸 현금으로 바꿔서 결제할 수 있도록해주면 굳이 저런 가상화폐 생태계를 조성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현금은 정부가 보증하는 생태계, 모든 거래처에서 받아주는 생태계를 갖추고 있는데?

저런 가상화폐 생태계가 의미가 있을려면 그 코인이 정말 희귀해서 어마어마하게 큰 돈을 줘야하는 귀중품 자산이거나, 아니면 저 생태계 속에서는 세금이라는게 없어야한다.

얼마전 탈모로 고생하는 친구하나가 의사 처방없이도 치료약을 판매해주는 해외의 이더리움 결제 사이트를 썼던 이야기를 해 줬다. 그 웹사이트는 현금으로 결제가 이뤄졌을 때 기록이 남고, 법적 분쟁이 생기는 문제, 또 소득 신고 문제 및 소득세 회피 목적으로 가상화폐 결제를 유도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런식의 불법 거래에 암호화폐가 얼마나 많이 쓰였으면, 일본 경찰청은 암호화폐 거래추적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카카오, 라인, 두나무 같은 업체가 발행하는 코인이 없어서 못 구하는 귀중품 자산도 아니고, 그런 대형 회사들이 기록이 남아 법적 분쟁이 생기는걸 회피하려는 이유도 없을테니, 남는 설명은 결국 소득세 회피다. 그 대형 IT회사들이 법인세를 내고 안 내고의 문제라기 보다는, 일반 서비스 이용자가 보상으로 받은 코인을 쓸 때 소득세를 회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구조가 바로 핵심이라는 뜻이다.

정부는 현금 화폐 경제에서 부가세들을 합산해 국가 GDP도 계산하고, 산업별 경제동향도 파악하고, 세금 정책, 지원 정책, 복지 정책들을 세운다. 근데 저런식의 가상화폐 생태계에서 부가세, 소득세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정부는 손 놓고 가만히 있을까? 언제나 정부 무능론을 주장하는 시장주의자지만, 정부가 그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주식처럼 거래되지만 현실에서 상품 구매도 가능해서 실물화폐를 대체할 수 있는 화폐라고 암호화폐를 엄청 찍어놨는데, 국가 단위로 발행하는 화폐도 금본위 or 정부보증이 들어가는 판국에 보증하는 구석은 하나도 없이 “그냥 믿고 쓰시면 됩니다”는 공허한 메아리만으로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만들 수 있나? 이런거보면 블록체인에 매달리는 개발자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는 철부지같다.

 

나가며 – 1인 미디어 시대의 명암

요즘 번화가를 가보면 카메라 하나를 들고 1인 미디어용 컨텐츠를 만드는, 이른바 “유투버”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월 수익이 수억이 넘는다고 하고, 자신만의 컨텐츠를 개발해 그런 방송을 찍는사람, 심지어는 그냥 잘생긴 얼굴만 보여주고 공부하는 모습만 보여줘서 스타덤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은 자기 컨텐츠를 제공한 대가로 수수료 일부를 플랫폼에 떼어주고 현금 수익을 얻고 있는데, 요즘 나오는 블록체인 쓴다는 사업 모델들이 딱 여기에 현금대신 코인을 준다는 사업 모델이다. (ex. 카카오의 클레이튼을 쓰는 COSMEE)

위에서 언급한대로, 그런 사업들에서 코인을 받는게 소득세 면세나 거래소 접근가능한 자산이라는 측면을 제외하고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서비스 업체들이 블록체인 시스템 위에 저런 서비스를 구현하려고 고생하면서 내는 비용 대비 장점은 얼마나 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혹시 중앙서버 안 쓰고 저런 체인형 서버쓰면 보안상에 어마어마하게 큰 장점이 있나? 달리 뭔가 큰 장점이 있으면 좀 일침을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