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파비의 인재 채용과 복지 – 4

0
1098

 

(Source: 어느 페이스북 페이지)

우리 개발팀과 개발자 채용이 힘들다고, SI 업체들 방식으로 성장한 사람들말고, 정말 기본기 다지고 실력 키우는 사람들 찾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고 우스개소리를 하다가 개발팀과 위의 스크린 샷을 공유하게 됐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스타트업 개발자들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개발자들이 용병 마인드로 여기 아니면 딴데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좋은 개발자를 찾기 힘든 이유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스타트업을 안 오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같이 둘러 앉아서, 항목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우리 회사는 과연 얼마나 많은 부분에 해당되는지를 따져봤다.

1번, 2번, 3번, 5번, 6번, 7번, 10번, 11번, 12번 정도가 스타트업의 “복지”와 관련된 항목들일텐데, 파비에서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의견들을 내 봤다. 아래에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1번. 수평적 구조 vs. 수직적 구조

이번 시리즈 글 1번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상명하복 대신 토론식 의사결정구조를 갖고 있다. 왜냐면 이미 출시한, 지금 만들고 있는, 앞으로 만들 앱을 만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남들이 했던 작업을 그대로 베끼지 않는 이상, 스타트업이 하는 일은 언제나 새로운 일이다.

스타트업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갖고 마치 용병 마인드의 신입 직원이 회사의 존망과 자기 인생의 존망을 100% 연동시킨 경영진과 같은 책임을 가진 것처럼 오해하는 분들의 눈에는 스타트업들에 퍼진 토론식 문화가 평등한 의사 결정 구조같이 보이겠지만, 사실은 경영진들도 잘 몰라서 같이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궁여지책 끝에 나온 업무 방식에 불과하다.

West-coast style vs. East-coast style에서 말했던대로 스타트업들 모여있는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토론식 의사결정구조로 업무가 돌아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데이팅 앱에서 유저가 좋아요를 눌렀을 때, 상대방이 먼저 좋아요를 눌렀으면 “너네 둘 다 좋아요 눌렀어~” 라고 바로 가르쳐줘야할까, 시간을 두고 가르쳐줘야할까, 아예 비밀로해야할까 결정을 내려야하는데, 데이팅 앱을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그 부분에 기획을 제대로 해 놓질 않았다.

당연히 개발 중 고민이 생기고, 같이 고민을 한다.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선택지를 골라서 서버 작업이 이뤄지고, AOS, iOS 개발자들이 각각 로직을 맞춘다.

7번. 벌써 몇 번을 갈아엎은거냐?

DM 보낼 때 서로 좋아요를 누른 상태면 방해되는 팝업창 없이 바로 채팅창이 뜨도록 했는데, 내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사실을 바로 가르쳐주면 쪽팔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시간을 두고 가르쳐주기로 했었던 부분과 조합이 맞질 않는다. 이미 서로가 좋아요를 누른 상태인데, 아직 안 알려줬으면 채팅창이 바로 떠야할까? 아니면 좋아요 눌렀다고 가르쳐주고 채팅창을 띄워야할까? 중간에 타이머를 넣어놓으면 서버에 엄청난 과부하가 걸릴텐데?

처음 이런 사건을 겪고 난 다음에 개발팀에 너무 미안하더라. 이사님이 이렇게 바꿔라 저렇게 바꿔라 코멘트 준 걸 밤새서 작업하던 신입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만 의논하는게 아니라, 파생된 문제가 뭐가 있을지를 같이 회의 주제로 삼도록 조직의 경험치가 증가하게 되었다.

상명하복식이었다면 기획자가 모든 걸 다 알고 명령했으면 됐을텐데라는 생각도 드는데, 실력이 없어서인지 그런 기획이 나오기는 힘들더라. 10번 갈아엎을 일을 1-2번으로 줄이려면 최대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하는 능력을 갖춰야되는데, 토론식 업무가 그럴 때 위력을 발휘한다.

상명하복을 하면 생각하는 훈련을 혼자서만 한다. 효율적이다. 대신 부하직원은 불평만 한다.

토론식 업무는 모두가 생각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 덜 효율적이다. 대신 조직의 생각하는 근육이 증가하는게 느껴진다.

불평만하고 근육을 키우고 싶지 않은 사람은, 미안하지만 스타트업과 맞지 않는 사람이다. 대기업 가시는 것을 권유드린다.

12번. 야근의 일상화

우리는 야근 안 한다. 투자자들이 미쳤다고 한다. 스타트업 “주제에” 무개념인거 아니냐고 폭언을 하기도 한다. 돈을 잘 벌고 있어도 더 채찍질을 해서 달려야할 판국에 야근을 왜 안 하는거지?

차라리 업무 시간에 집중도를 120%로 끌어올리고, 쓸데없이 커피, 차, 담배, 잡담에 시간을 안 쓰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120% 집중도로 하루 24시간을 달려야하는거 아니냐고? 인간의 몸은 기계가 아니라서 며칠만 그래도 집중력이 0%로 급전직하한다.

오늘만 살려고 일하는거 아니지 않나? (대신 업무시간에 진짜 열심히 일해야한다ㅋㅋ)

퇴근 길에 운동하고가면 잠도 잘 오고, 피로도 싹 풀리더라. 회사에서 저녁 식사비를 안 챙겨주고 헬스장 지원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니, 야근을 해야 저녁 식사비를 챙겨주는거 아님?

11번. 일정의 압박

스타트업만 일정의 압박을 받는거 아니다. 대기업은 야근 안 하나? 사실 급여가 높은 직장은 다들 이유가 있다. 회사 대표도 호구가 아니기 때문에, 높은 급여를 줬으면 그만큼의 노동력으로 보상을 해 줘야 한다.

일정의 압박을 해결하는 제일 좋은 방법을 2가지만 꼽으라면, 무리한 일정을 잡지않고, 업무 시간을 매우매우매우 효율적으로 쓰면 된다.

1년간 새벽 3시에라도 퇴근해본 날이 50일도 안 되고 주말도 없이 살던 뱅킹 신입 시절, 왜 런던에 있는 내 Counterparty들은 12시 전에 다들 집에 가는건지 너무 궁금했었다. 유학가서 만나본 그 친구들은 업무 시간에 전화도 안 받고, 점심도 샐러드만 먹고 일만 하더라. 어떻게든 일찍 집에 가려고 무서운 집중력과 속도로 일하는걸보고 느낀점이 참 많았었다.

무리한 일정이 떨어지면 팀장은 경영진과 싸울 줄 알아야한다. 대신, 낮에 커피, 담배 그만하고 난 다음에나 경영진과 싸우자.

10번. 재무 상황

스타트업 대표의 자격이 뭘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딱 하나만 꼽으라면 월급 챙겨줄 수 있는 자금력이다. 부잣집 자식이어서 자금력이 풍부할수도 있고, 사기를 잘 쳐서 눈먼 돈을 잘 받아올 수도 있다.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건 스타트업 대표하고 있으려면 직원 월급은 챙겨줘야한다. 못 할 것 같으면? 미리 귀뜸을 해줘야지.

대기업들, 상장사들은 돈이 넉넉한 줄 착각하는 분들 많던데, 매출액이 계속 증가하는 회사들마저도 단기 유동성 압박(Read “대량급여이체”) 때문에 사채를 끌어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명동 사채 시장이 망하지 않고 번성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런 자금 수요 때문일 것이다.

스타트업들이 사채 쓸 여력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돈 마련할 생각없이 1-2달 월급 밀려도 상관없겠지라는 마인드의 경영진은 직원 채용하면 안 되는 사람, 아니 사업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매출액 1원도 안 나오는 초 Early-stage의 어느 스타트업 경영진들이 투자금이 들어오자마자 자기 연봉을 1억씩 책정하고, 배당금 지급일을 논의했다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파비처럼 야근 안 하는게 무개념 스타트업이 아니라, “회사 돈 = 자기 돈” 이라는 경영진 정신 상태가 무개념 아닌가?

2번. 연봉이 너무 적다

우리 회사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다. 우리는 무조건 실력대로 (+alpha) 준다. 우리 개발자들 중에는 연봉 잘 챙겨줘서 왔다는 분들도 있다. 스타트업 아닌 줄 알았단다.

3번. 실력 대비 연봉 불평등

다시 말한다. 우리는 실력대로 연봉 책정이 된다. 그리고, 금융시장 용어로 Marking-to-Market을 한다. 실력이 올랐으면 바로바로 급여에 반영한다는 뜻이다. 들어온지 3개월만에 새 연봉 계약서를 들이미니까 개발팀장님이 놀라서 물으시더라. 진짜로 연봉 오르는거냐고.

실력없으면 반대로 좀 기분 나쁘겠다.

6번. 경력과 상관없는 일들

스타트업이라 당연히 잡일(?)이 많다. 그런데, 그런 잡일은 거의 다 대표가 (해야)한다. 마켓컬리의 김슬아 대표가 그러더라. 대표는 남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어느 스타트업에 Data Scientist로 들어갔다가 DB에 쿼리 한번 때릴 겨를도 없이 투자사와 미팅자리에만 매일같이 불려나갔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지금은 떠나신 프론트엔드 개발자 분이 유일하게 자기 커리어와 관계없는 일을 하다가 나가셨다. 본인이 관심을 보이길래 간단한 앱의 서버와 DB를 “공부하면서” 해보라고 기회를 드렸는데, 그걸 “반드시 해라”는 압박으로 느끼셨던 것 같다.

미안하다. 요즘은 “공부”해야되는 부분을 미리 물어보고 하고 싶은지 따지고 난 다음에 채용 결정을 한다. Node.js로 백엔드 한번도 안 해 본 분한테 배울 의향이 있냐고 물어보고, 싫다고하면 다른 직장 찾으시기를 빌어드린다.

우리는 업무를 모듈식으로 운영해서 백엔드, 프론트에서도 자기 업무가 완전히 분화되어 있다. 채용할 때도 어떤 앱을 담당한다고하고, 회사 사정상 다른 앱 개발을 하게되면 반드시 의사를 타진한다. 하고 싶지 않다면 신규 채용을 하거나, 개발할 내용을 바꾼다.

회사의 성장만큼이나 직원의 경력도 소중하니까.

다시 뽑는 프론트엔드 주니어 분의 성장을 위해서 우리 개발 일정을 좀 늦추고, 일부러 가벼운 외주 프로젝트 하나를 받았다. 실력 키우시는데 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말은 이렇게 했는데, 스타트업 뿐만아니라 대기업이라고해서 자기 업무만 하는 경우는 드물다. 남들 아무도 못 하는 업무로 초고액 연봉을 받고 들어가신게 아니라면.

5번. 퇴사하는 사람들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파비에서도 몇 분이 자리를 채우다 나가셨다. 근데, 위에 말한 프론트엔드 개발자를 제외하면 개발팀원들이 아무도 미안해하질 않는다. 다들 잘못왔던 분들이 나갔다고들 생각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잘못된 매칭인데도 채용 결정을 했던 회사 고위직들이 직원들에게 사과한다. 불만이 이슈화되고나면 최대한 빠른 결정을 내리는데, 하루가 더 늦어지면 일은 진척되는 것 없이 그만큼 더 직원들의 불편만 가중될 뿐이다.

생각해보니 목소리 높인적이 딱 2번인데, 나가셨던 분들이 끝까지 자기가 능력자라고 우기길래 잘못한 업무 리스트를 하나하나 지적해줬던 날인 것 같다.

나가며 – 스타트업에 대한 오해와 편견

이런저런 구직/구인 플랫폼에서 마음에 드는 이력서를 발견하고 전화를 걸면 8번. “회사에서 당장 만나고 싶다고 아우성”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은 “내가 이런 전화를 받을 자격이 있지~ 에헴~” 같은 거만한 태도를 갖고 있다는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바로 전화를 끊으시는 분들이 참 많다.

위의 저런 글이 페이스북에 돌아다니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상황이니 충분히 이해는 한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저렇게 운영되진 않는 것 같아서 “진짜 억울하다! 억울해!” 싶을 때가 있기는 하다.

아니라는 걸 쉽게 가르쳐 줄 방법이 없을까는 고민을 하다가 오늘 글을 쓰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도움이 될까? 블로그 글 잘 안 읽던데?

사무실에 앉아 계신 분들은 다들 꼼꼼하게 읽고 오신 분들이라서 Selection bias가 있는 것 같다.

근데, Selection bias를 더 강하게 만들 분들이 또 오시면 좋겠다.

 


 

파비 페이스북 페이지가 운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