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스타트업 문화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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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운영하고 있다고하면 주변에서 흔히 듣는 질문이,

  • 사업은 잘 되어가냐?
  • 투자는 받았냐?
  • 돈 없어서 힘들겠네
  • 매일 집에도 못 가고 힘들겠네

같은 표현들인데, 위의 3개 질문도 파비와 딱히 관련이 없지만, 4번째 질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말 관련이 없다.

지인들은 스타트업이 워라벨 (Work-Life-Balance)을 지키다니 정신나간거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하고, 그렇게 사회주의적인 운영하면 말아먹는다고, 직원을 더 꽉 죄어야한다며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시는 선배 창업자 분들도 많다.

집에 일찍 퇴근하기만 하면 널럴한건가? 눈에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한번 풀어보자.

(Source: scottdylan.com)

East-coast style vs. West-coast style

이전 글에서 한번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미국 동부와 서부의 직장 문화는 상당히 다르다. (미국 각 주마다 문화 차이가 물과 기름처럼 선명하게 구분된다고 했던 18세기 미국 독립운동가도 있었다.) 회사마다 케바케지만 일반적으로 미 동부는 한국의 대기업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상명하복 구조와 비슷하고, 미 서부는 소위 말하는 스타트업 문화, 즉 “자율문화”다.

한국 대기업에서 야근 많이하고, 실적 압박 많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불평을 많이 듣는데, 미 동부의 어지간한 High-paid 직장을 가 봐도 압박을 주는 방식이 문화적으로 좀 차이가 있을 뿐,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니 다들 서부식의 스타트업 문화, “자율문화”가 워라벨도 맞춰주고, 직원을 위하는 문화라고 착각들을 하는 것 같다. 한국 대기업들도 이런 “복지”를 제공해줘야 우수한 인재를 더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직장 내 문화를 바꾸겠다고 노력들을 하던데, 다들 핵심을 비껴가고 있는 것 같다.

Working hour가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두 문화의 차이 by case

국내 대기업 문화에서 앱 하나를 기획, 디자인, 개발, QA해서 서비스를 내놓는 작업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위에서 개발 기간 6개월을 준다. 기획 팀이 거의 2달 반 정도를 써서 완벽한(?) 기획서를 만들어 온다. 앱 페이지는 30페이지도 안 되는데 기획서는 300페이지가 넘을 것이다. 기획서가 나오는 시점까지 회의에나 참석하고 널럴하던 디자인 팀에 이제 엄청난 압박이 밀려온다. 1달도 안 되는 시간에 엄청난 속도로 디자인 팀이 그 기획서에 맞춰서 디자인을 찍어냈다. 그 동안 기획, 디자인 회의에만 참석하던 개발팀에 그 압박이 넘어온다. 기간은 2달 반 밖에 안 남았다. 2달 동안 집에도 못 가고 드디어 앱을 완성한다. QA팀에 앱이 넘어가고나면 온갖 버그들이 올라오고, 개발팀은 앱이 완성됐는데도 집에 못 가고 불평불만만 쌓인다. 가끔 기획과 디자인을 수정해야하는 것 같아서 두 팀이 항상 대기상태다. 억지로 억지로 6개월만에 앱을 출시했다.

스타트업 문화에서 같은 작업을 진행한다고 생각해보자. 투자사에서 개발 기간 6개월을 준다. 기획자이며 디자이너, 기획자이며 개발자인 팀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1달동안 회의만 한다. 뭔가 매우 어설픈 기획서가 나왔다. 이걸로 앱 만드는게 가능한걸까는 의구심이 가득하지만, 일단 시작한다. 당연히 뜯어고칠일 투성이다. 퇴근하고 집에와도 디자이너나 개발자 모두 앱 생각 밖에 안 한다. 뭘 어떻게 뜯어고쳐야할지 고민이 안 끝났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서 디자인과 개발을 뜯어고친다. 어느 시점이 되면 다들 지치기도 하고, 자기들 머리에서 나올 아이디어가 소진됐기 때문에 사소한 수정만 덧대면서 개발 작업을 완료한다. 6개월이 걸린다.

(Source: entrepreneur.com)

진짜 스타트업 문화, “자율문화”는 뭘까?

둘 중 어느 문화가 정답일까? 글쎄다. 좀 더 정확하게 질문하면 구성원이 누구냐에 따라 정답이 갈린다.

자기 업무만 딱 하고 끝낸다, 나머지는 다른 팀 소관이니 나는 모른다는 문화가 바로 대기업 문화다. 팔이 끊어지건 말건 다리는 잘못한게 없으니까 팔 끊어진걸 다리한테 책임 묻지 말라는 사고 방식이다. 각 영역별로 매우 뛰어난 능력과 경험치를 갖고, 업무에 충실하지만 책임소재가 명확하게 나뉘고, 결정적으로 그 사업의 성패가 나의 급여와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

반대로 팔이 끊어진 건 다리가 잘못된 길을 갔기 때문이다, 팔, 다리가 따로 놀면 우리는 둘 다 짧기 때문에 무조건 경쟁에서 진다, 총력전으로 간다는 컨셉이 스타트업 문화다. 인력이 부족하고, 구성원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Lotto 당첨급의 대박이 터지지 않는 이상 빠른 속도로 배우며 서로의 능력치를 합쳐서 시너지를 이끌어내야하는 업무 체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 방법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각 문화별 폐해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보면 매일 늦게까지 남아서 다른 팀이 보내주는 결과물 기다리고 있는 시간 낭비가 너무 짜증난다, 부장님은 왜 퇴근 안 하는지, 왜 나는 눈치없이 일찍 퇴근한다고 욕 먹어야하는지에 대해서 엄청난 불만을 쏟아낸다. 그러다 자기가 과장, 차장으로 승진하면 다른 팀 결과물을 무작정 기다려야하는 그 문화에 적응해서 “오늘 늦어ㅠㅠ”라고 문자 한통 보내고는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있다.

스타트업 친구들은 빨리 못 배우고, 회사 사업 모델 이해 못하고, 밍숭맹숭하게 다니는 직원들에 대한 혐오감을 쏟아내고, 정작 자기도 경험이 없어서 좌충우돌하느라 회사 인력 하나하나 챙기기 힘든 점을 괴로워한다.

대기업 다니다가 “내가 저 팀 누구누구보다 더 잘할 것 같다”고 주장하며 그만두고 스타트업 간 친구들은 무슨 일 해라고 딱딱 지적해주지 않는 문화에 당황해서 한동안 어버버거리고 있다. 내가 이걸 해야하는지 누군가에게 물어봐야할 것 같은데, 아무도 답을 안 해주니 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모르겠단다.

스타트업 문화에 적응한 친구들이 대기업 스타일로 운영되는 조직에 들어가면 “이 회사 사람들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냥 기계 같다”고 혹평을 해댄다. 뭐 하나 하고 싶다고 위에 올리면 “나대지마라”고 핀잔만 받는단다.

둘이 반대로 된 회사라면? 회사 임원진은 서비스 성공을 위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담아 기획을 변경하고 운영 방식을 고민하는데, 디자인과 개발은 왜 자꾸 끝난 프로젝트 일을 더 만들어내냐며 화를 낼 것이다.

(Source: myturnstone.com)

West-coast style의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우리는 칼퇴하는 회사다. 워라벨을 지켜준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실상은 더 많은 책임을 직원들에게 나눠줘놓고 있다. 우리 회사 사업 모델이 타게팅 광고라는 점, 그 광고를 위한 데이터 확보, 광고 지면 확보에 모든 초점을 맞춘 서비스를 계획, 출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원들 스스로가 이해하지 않으면 잉여 인력이 된다. 머리가 아주 좋으면 업무 시간만 써서 충분히 그 사업 모델을 이해하고 같은 눈높이에서 다른 직원들과 협업을 할 수 있겠지만, 예외적인 천재들을 빼놓고 나면 고민을 더 한 직원과 아닌 직원간의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바로 “자율”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자율의 최대치를 회사에 투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최소치를 투자하고 있으면 결국은 그 차이가 눈에 드러나게 된다.

스타트업에 처음 들어오는 시점에 자율 최대치, 최소치 직원의 연봉이 둘 다 3천만원이었다고 해보자. 대기업에서는 3년간 같은 팀 소속이라는 이유로, S급, A급, B급 정도의 (정성)평가로 상여금이 약간씩 바뀌는 정도겠지만, 스타트업에서는 완전히 다른 패키지를 들게 된다. 아마 최소치 직원은 눈치 때문에 일찌감치 쫓겨났을 것이고, 최대치 직원은 승진 + 스톡옵션 같은 패키지를 받게 될 것이다. 안 그러면 그 직원은 무조건 나가서 자기 회사를 차리거나 눈치빠른 다른 스타트업이 데려가려고 할게 뻔한데, 상식이 있는 회사 경영진이라면 그 잘 훈련된 직원을 붙잡기 위해서 다양한 인센티브를 던져주지 않을까?

스타트업 공동 창업자들이 부지기수로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누군가는 최대치를 쏟아붓고 있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최소치 정신 에너지를 쓰고 있다면 공동 창업자들끼리 잘 융합이 될까? 이걸 “자기 회사”라고 생각하는 공동 창업자들도 추풍낙엽처럼 날라가는데 최소치 직원이 쫓겨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퇴근을 6시에 하면 좋은 회사일까? 6시에 퇴근했고, 앱의 특정 기능에 버그가 생기면 오밤중에 나와서 고치라고 하지는 않지만, 누구의 무슨 잘못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겼다는 걸 기록에 남긴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하겠지만 인사평가에 반영된다. 기본급, 상여금, 스톡옵션 등등 어떤 방식의 패키지를 받고 있건 상관없이 문제 발생에 대한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된다. 단지 새벽에 나와서 버그 수정해라고 하질 않고 있을 뿐이다.

너무 재수 없는 것 같다고? 차라리 오밤중에 부르지? 글쎄다. 처음부터 그런 치명적인 버그가 안 생기도록 앱을 만들었어야하는거 아닌가? 업무 시간에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못했던 것에 대한 처벌을 오밤중에 나오라고 전화로 내리는게 맞을까? 아니면 급여를 깎고 해고하는게 맞을까?

너무 비인간적인가?

(Source: socialmaharaj.com)

나가며 – Crew들이 많은 스타트업

이런 스타일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면 직원들을 “노예”라고 표현하지 않고 “크루(Crew)”라고 표현한다. 함께 배를 끌고가는 동료라는 의미에서 쓰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모든 스타트업 직원들이 “크루”의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처럼 대기업 문화, “노예”문화가 고착화된 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전세계 많은 스타트업 문화를 가진 회사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요컨대, 그 나라 문화의 영향이 아니라 그 직원의 개별적인 특성이라는 뜻이다. 아마 10명 중 5명 이상이 Crew인 스타트업마저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Crew가 많은 회사여야한다. 원래부터 Crew의 자질을 갖춘 분들 중 누군가는 한국 대기업 문화에 잘 적응하고 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못 참고 뛰쳐나와서 창업을 하기도 한다. Crew의 자질이 없는 사람들이 창업을 해서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있다.

말을 바꾸면 “자율문화”로 회사가 성장하려면 직원들 중에 Crew인 사람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야한다. 아니라면? 대기업 문화가 더 맞는 문화이지 않을까?

스타트업의 도전적인 문화를 즐기는데 급여는 안정적으로 받고, 칼퇴하면서 느긋하게 돌아갈 수 있는 그런 편한 직장은 없다. (이런 말 하셨던 개발자 분은 매우 뛰어난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채용을 취소했었다.) 왜? 국민 세금 파먹고 있는 몇몇 정부 조직이 아닌 이상 그 회사는 무조건 망할테니까.

“자율문화”에서는 워라벨이 지켜지는 대신 더 많은 책임도 따라온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Milton Friedman이 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