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구직의 목적: 회사 vs. 팀 vs. 일 vs.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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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대기업들이 공채를 포기하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참고로 대기업 공채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문화다.

국내 대기업을 지원해 본 적이 없는 탓에 어떤 방식으로 채용이 돌아가는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나의 자율성은 숨막히게 제한되고, 그들이 원하는 시스템에 맞춰진 서열에 따라 채용 순서가 끊길 것 같다는 느낌은 있다. 그렇게 커트라인 안 쪽에 들어간 사람들끼리는 “동기”라는 이름으로 묶이고 친하게 지내고 그런다던데, 학부 졸업하고 난 이후로 동기라는게 있는 인생을 살았어야 말이지 ㅋㅋ

필자가 겪었던 모든 채용은 정확하게 포지션의 이름과 역할, 업무 장소가 주어져있고, 어떤 훈련을 거쳤어야 들어갈 수 있겠다는 감이 잡히는, 그런데 채용을 많이해봐야 2명인 자리들 밖에 없었다. 2명을 뽑으면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1명을 낙마시키더라.

이렇게 정리하면 두 시스템이 많이 다르게 느껴질지 모르겠는데, 겉보기에만 다를 뿐, 정작 구직자와 회사가 원하는게 큰 차이가 없다.

  • 회사 (의 종합적인 인지도)
  • 팀 (의 스타일)
  • 업무 (의 내용)
  • 급여 (월급+상여+복지)

위의 4가지 요소의 가중평균에 따라 구직자는 구직을 결정하고, 회사는 자기가 가진 요소들의 가중평균 값으로 구할 수 있는 구직자 중 최고를 선별한다.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구직자 마다 위의 4가지 중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다르다는 점일 것이다.

구직의 목적: 회사 vs. 팀 vs. 일 vs. 돈

회사가 가장 중요한 문화

한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앞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회사”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봤다. 유명한 회사, 큰 회사를 가는게 가장 뛰어난 인재의 우선순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공기업, 대기업”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급여가 낮다면서 인력난이 심하다고 하니 정부가 청년내일채움공제를 비롯한 다양한 정책으로 급여 차이를 보전해주려고들 한다. 그래도 중소기업이 인력난에 직면한다는건 역시 “급여”보다 “회사”가 더 중요한 가치를 갖기 때문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도 실력 좀 안 되는 신입이지만 뽑기 힘드니 한 발 양보하고 우리회사 신입 기준 연봉 + 채움 공제 오퍼를 날렸는데, 자기는 대기업 신입 연봉 아니면 안 간다고 하더라. 총액만 따지면 우리 오퍼 금액이 더 높았고, 상여금의 대박 가능성을 따져보면 우리가 더 클텐데…)

이런 관점이면 골드만 삭스 미국 외딴 동네 지점에서 비용처리 영수증 관리직으로 근무했던 사람이 서울의 모 국내 유명 증권사 본사에서 초핵심 인력으로 일했던 것보다 더 대접을 받는 상황이 온다.

실제로 딱 저런 배경을 가진 모교 선배 하나가 국내 로스쿨을 거쳐 금융전문가라는 타이틀의 판사로 임명되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언제부터 영수증 처리 관리직이 금융전문가로 인정 받는 세상이 된 걸까? 회사 이름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우리나라니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팀이 가장 중요한 문화

요즘 스타트업들이 주로 강조하는 관점이다.

우리 회사는 야근이 없다,

우리 회사는 가족 친구 같은 조직이다.

상하 관계가 없다.

같은 표현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전에 다른 글에서 쓴대로, 미국기준 동부식 vs. 서부식이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서부식 업무 문화를 가진 회사들이 자기네 팀의 문화가 2030 젊은 세대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인재 채용에 나선다.

딱딱한 동부식 문화의 끝판왕인 대기업 꼰대 문화가 한국 사회 전역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고 2030 세대가 그런 꼰대를 극혐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도가 많아지면서 한국의 기업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팀의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팀원 간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를 따져보는 구직자들도 있다. 너네 팀 별로 대단해보이지 않아서 못 가겠다, 면접 중에 보니까 곧 팀장이 팀원이랑 멱살잡고 싸울 것 같더라, 조직 내부 불화로 어떤 인원들이 회사를 떠났다던데 등등의 정보가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 회사는 동료의 실력과 업무 스타일이 최대의 복지라고 주장하는 회사인만큼, 우리 스타일로 근본부터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업무에 접근하는 사람들만 찾는다. 그리고 실력이 검증되면 믿고 맡긴다. 다른 터치 없이. 이런식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주변 사람들과 지식을 공유하는 문화가 맞지 않는 사람에게 우리 팀은 그렇게 좋은 팀이 아닐 수도 있겠지.

업무가 가장 중요한 문화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그래서 내가 앞으로 어떤 커리어를 밟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지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필자의 인생 내내 거쳐간 커리어들이 모두 이 관점에서 이뤄진 선택이었다. 언제나 (한국인의 기준으로) 회사 이름값과 학교&전공의 명성이 높은 자리 대신, 내가 하는 업무와 내가 하고 싶은 전공을 보고 갈 곳을 정했다.

우리 회사의 인력 운영도 같은 관점에서 이뤄진다. 당신이 뭘 가장 하고 싶은지, 그 중 회사에 가장 도움이 되는 업무는 뭔지를 나열한 다음, 상황에 맞춰 업무를 나눈다. 설령 우리 회사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본인이 원했던 커리어를 밟을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다. 당연히 채용도 그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 위주로 이뤄진다. 우리 회사에서 제공할 수 있는 업무가 본인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으면 채용 프로세스 자체를 진행하지 않는다. 회사의 성장만큼이나 그 분의 커리어도 중요하니까.

급여가 가장 중요한 문화

돈만 많이 준다면 어디라도 상관없다는 관점이 딱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급여 패키지에 상여금 비중이 낮고 월급 비중이 높으면 좋아라하고, 다양한 복지 패키지가 붙어있으면 그걸 최대한 빼먹겠다고 생각하는 관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최대한 빼먹으려는 직원을 보는 보스의 눈은 어떨까?)

어차피 위의 3가지 항목에서 별반 차이가 없는 직군이라면 급여만 보고 움직이는 경우가 아마 노동 시장의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개발자 (중고)신입에게 연봉 5천을 제시하는 스타트업들이 이 관점에서 높은 급여를 제시하고 있지 않을까?

이력서들보고 전화해보면 5분도 지나지 않아 어떤 스타일의 구직자인지 표시가 난다. 회사 사업 모델과 인력 상황, 진행 상황을 간단하게 이야기해주는데, 난 스타트업 따위는 가지 않는다는 태도를 가진 “회사” 중심인 사람들이 역시 압도적으로 많고, “다 됐고, 돈은 많이 주나요?”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쓰시는 백엔드 기술은 뭔가요, 제거 도커를 공부하는 중인데 거기서는 쓸 일이 있을까요” 등등의 개발 플랫폼에 관한 질문을 하면서 업무 내용을 따지는 사람들, “회사 분위기는 어떤가요? 나이대는 어떤가요?” 같은 팀 구성에 관련된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정은 당연히 가중합계 값에 따르겠지만,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알려주는 예시가 될 것이다.

수시 채용이 낳을 미래

공채 문화의 종말

한국과 일본에 오랫동안 회사가 가장 중요한 문화가 자리잡았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공채였을 것이다. 무슨 직렬이건 상관없이 일단 동기라고 묶이고, 동기들끼리는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는 문화가 생겨난 것도 끼리끼리를 좋아하는 한,일 문화권과 잘 맞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다 특정 팀에 대한 채용이 아니라 말 그대로 대규모 공채였기 때문에, 들어가서 뺑뺑이 돌며 이런저런 업무하게 되는 일이 자주 있었으니까, 회사 이름만 보고 준비하는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회사 이름이 아니라 업무내용 경력으로 채용하는 수시채용 위주로 돌아가면, 공채 문화의 산물이었던 회사가 가장 중요한 문화가 꽤나 퇴색될 것이다.

중고신입의 전성시대

수시채용은 신입에게 굉장히 불리한 채용 방식이다. 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이 경력 1년보다 일을 잘 못할 확률이 매우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 경력직이 너무 일을 못해서 짤렸고, 신입은 준비가 탄탄하게 된 그런 예외적인 케이스가 아니라면.

사실 대기업들도 신입을 뽑기 싫어한다. 가르치는데 최소 1-2년의 시간을 들여야하는 경우가 절대다수인데, 교육비용을 실컷쓰고나면 나가는 경우도 생기고, 교육시켜놓고 보니 그렇게 대단한 인재는 아닌 것 같아서 한직으로 돌려야되고 등등 위험부담을 해야되니까. 대기업에 간 엔지니어 직군이 처음 2년동안 교육만 받고 기계 한번 못 건드려봤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월급 루팡짓만 했던 직원이라는거다ㅋㅋ

수시채용으로 인재 채용을 하게되면, 경력 3-4년차 대리급을 원하는 회사들 중 가장 쉽게 그런 레벨의 인력을 구할 수 있는 회사들이 중고신입을 쓸어가고, 그런 인력을 키우던 회사는 인재를 뺏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직 문화의 활성화

경력 5년차인 대리 눈에 우리 팀 사람들은 다 무능한데 공부도 안 하고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면 어떨까? 수시채용 문화가 활성화되면 굳이 참고 견딜 이유가 없다. 실력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 더 성장하고 싶은 분들은 조건이 좋은 조직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잉여 인력만 남는 회사들은 금방 무너질테니, 한계 기업을 제거하고 우수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스타트업에게는 희망

많은 스타트업들을 보면, 창업진은 대기업 인력 풀을 좀 무시해도 남들한테 엉뚱한 소리 안 들을 수 있을만큼 스펙이 화려하다. 학벌, 경력, 업무 이해도 등등 노동시장에서 선호되는 요소들을 봤을 때, 스타트업의 경영진은 충분히 뛰어나지만, 정작 그런 스타트업들이 인재 채용에 나서면 평범한 중소기업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직면한다.

그 회사는 제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언제 더 커지면 연락주세요,

월급은 주나요,

매출액은 잘 나오나요,

아~ 스타트업은 안 가요 (전 스타트업보다는 좋은(?) 직장 갈 스펙이에요)

등등 창업진의 가슴에 못을 박는 거절을 들을 때가 많다. (혹자는 스타트업 인재 채용을 영혼을 녹여넣는 작업이라고 하더라.) 수시 채용이 일상화되면, 경력을 쌓기 위해서 자기가 꿈꾸던 대기업이 아닌 조직을 골라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일텐데, Jot소기업이라는 모욕을 듣는 중소기업에 가는 것보다는 착실하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업무를 고르는 편이 본인의 경력 관리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HR업무의 이관

공채 시절에는 HR이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었다. 학벌과 학점 등등의 요소로 커트라인을 정하고, 1차 면접으로 사람을 걸러내는 업무를 전부 HR이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각 팀별로 좋은 인재를 배정받으려면 HR의 눈치도 봐야했고, 심지어는 매년 있는 인사 평가도 HR에 의존적인 경우가 많았다.

수시채용이 제대로 이뤄지게되면, 각 팀별로 HR에게 어떤 사람을 뽑겠다는 통보와 함께 연봉에 대한 예산을 배정받게 된다. 채용을 위한 인재 선택은 그 때부터 각 팀에게 이관된다. 직접 서류전형도 해야하고, 직접 면접도 봐야한다. 누가 더 자기네 팀과 맞는 사람인지 고민해서 결정도 해야한다. 연배있는 대기업 출신들이 스타트업을 하게되면 이런 작업을 정말 못하는걸 자주 보게 된다.

대기업 인사팀 15년 경력이면 예전에는 인재 판단 전문가, 회사의 방향을 정하던 핵심인재라고 생각하겠지만, 수시채용 시대가 오면 대기업 인사팀 경력은 서류처리나 했던 사람, 이상한 인사평가 문항만 귀찮게 돌려서 업무를 방해했던 사람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수시채용이 당연한 외국계 IB 재직시절, 국내 대기업 인사팀 출신 팀장이 채용에 자꾸 훼방을 놓으니까 우리팀 대표님이 “인사팀 주제에”라고 무시하는 발언을 하시는걸 본 적도 있었다. 거의 같은 인력 풀을 흡수하던 전략 컨설팅 회사에서 인사팀은 이력서 프린트 해서 쌓아놓고, 컨설턴트가 이력서 몇 장 골라주면 전화로 인터뷰 스케줄 잡아주고, 재직자들 4대보험 및 급여 관련 문서 관리만하는, 그 회사의 2류 인력이었다.

공채를 없애는게 맞는 전략일까?

글 전반이 공채에 부정적이지만, 대기업 입장만 놓고보면 똑똑한 신입을 가장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공채를 포기하는게 꼭 맞는 전략은 아닐 수도 있어 보인다. 특히 한국처럼 “이직=배신” 같은 문화가 기저에 깔린 노동시장을 갖춘 나라에서는 똑똑한 인재가 시장에 나오는 순간부터 잡아두는게 당장 교육비용 1-2년치보다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이런 관점이 한, 일의 평생고용 시스템이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던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한 회사에서 특정 시스템에 맞는 지식과 경험을 얻은 인재가 다른 조직에 가면 언제나 “이직 Flu”를 겪게 마련이고, 이런 위험을 쉽게쉽게 부담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적인 문화에서는 더더욱이나.

비용이라는 측면에서도 사실 공채가 훨씬 더 효율적이다. 회사의 100개의 팀이 각 1명씩 사람을 뽑는다고 공고를 올리고 따로 면접을 진행한다고 해보자. 공통적으로 봐야하는 항목을 굳이 100개 팀이 나눠서 볼 필요가 있을까? HR에서 한번에 정리해서 1차로 거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이런 프로세스를 최소 2단계 이상 거쳐야하는 회사라면 수시채용에 시간을 써야하는 각 팀별 담당자들도 추가된 업무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공채 vs 수시”에서 회사별 선택은 최소 2단계 이상의 공통된 절차를 밟고 뽑아야할만큼 통일된 인재 풀, 통일된 직군이 현재 기업의 진화 방향과 맞느냐 + 사내에 인력 수요가 많이 있느냐에 대한 답에 따라 갈리겠지.

(Source: 네이버 블로그: 라플라스의 오류)
(Note: 영화배우를 인스타그램으로 채용… 채용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ㅋㅋ)

나가며 – 회사 vs. 업무 (회사 vs. 나)

예전처럼 인력들이 비슷비슷한 배경지식을 갖고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시대도 지났고, 업무가 비슷비슷하지도 않다.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전문성을 쌓고 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커리어를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니, 아무래도 공채는 구식 채용 시스템이 될 수 밖에 없다.

회사의 여러 업무를 골고루 시키며 “뺑뺑이”를 돌리던 공채 시절에는 회사의 인사팀에게 자기 커리어를 맡기면 됐다. 자기 능력치에 맞게 어련히 알아서 업무를 배정해줬을 테니까. 수시채용 시대가 오면, 자기 밥그릇을 자기가 챙겨야 된다. 말을 바꾸면, 회사 이름값에 따라 구직을 결정하면 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내 인생 커리어를 내가 직접 설계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실제로 그렇게 될까? 공채는 이제 없어질까? 대학 입학고사 시험 한 문제에 인생이 바뀐다며 수능 듣기평가 시간에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시키던 나라였는데, 더 이상 학벌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사회, 실력이 우선인 사회가 됐다. 대기업의 수시채용은 그런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는 하나의 작은 선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