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학교 교육의 변화

2115

3년 가까운 시간동안 공대 출신 위주의 수강생들 대상으로 강의를 하며 어느정도 확신이 생겼는데, 공대는 이과의 경영학과 같은 곳이라는 확신이다.

참고로 경제학 학부시절 경영학과의 이미지는 수학을 깊게 공부하지 않고, 수학을 잘 몰라도 학계에서 살아남는데 큰 문제가 없고, 기업에서 프로젝트 많이 따와서 돈 많이 벌어주는 세일즈 전문 교수가 실력있고 능력있는 교수가 되는 곳이라는 이미지다.

공감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일단 지난 20년간 경영학과의 모습을 한번 정리해보자.

Source: https://carbonmarketwatch.org/2012/05/30/ji-and-aau-surplus/bubbleburst/

거품빠진 MBA 학위

경영학과가 2000년대 초반부터 MBA 바람을 타고 뭔가 천재같은 사람들이 MBA를 다녀오고, 그 석사 학위만 있으면 초고액 연봉을 받는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했었다. 학부 입학 커트라인도 덩달아 올라갔다. 20년이 지난 요즘 MBA를 갔다온 사람이 천재라고 생각하는 직장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MBA 졸업생에게 과다한 프리미엄을 주며 자리를 주는 업계도 거의 없어졌다. 학부 수준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얕은 지식을 몇 줄 더 공부하고 오고, 그 사이에 파티, 골프 같은 인맥 쌓는 일만 열심히 하는 “비생산적인” 석사 학위라는 걸 시장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U-Penn을 제외하고는 학부에 경영학과를 가진 미국 대학교가 거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지 파티와 골프로 인맥을 쌓는 곳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학과에 기업 프로젝트가 몰려들어가고, 또 많은 경영학과 교수들은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기업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갖다 준다. 그런 업무에서 좀 덜 아카데믹한 접근이 들어가면 전략 컨설팅이라는 회사들의 업무가 됐었다. 미국 명문 MBA 출신들이 우르르 들어가는 직장들이었지.

전세계 1위 전략 컨설팅 회사로 알려진 M모 회사가 스마트폰은 일시 유행이라며 LG에 기존의 피쳐폰에 더 집중해라는 보고서를 올렸던 탓에 결국 LG 스마트폰이 회사 덩치에 걸맞지 않은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다는 조롱이 시장에 퍼진 것만큼, 시장이 더 이상 전략 컨설팅을 “미래전략”을 위해 쓰지 않는다. 대규모 해고, 사업라인 변화 같은 회사(오너)가 원하는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외부 기관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원래부터 그랬어야하는 곳이기도 했다. 아는게 없는 사람들이 아는체 잘 하는걸로 들어가는 조직이었으니까.

(Source: Naver.com)

공학도의 지나친 욕심 feat. AI

요즘 AI를 앞세우는 공대 상황을 한번 보자.

AI는 컴퓨터 공학 전공자들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엄청난 언론 플레이를 했다. 정작 실리콘밸리에서 뽑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대부분 수학, 통계학을 엄청나게 공부한 수학, 통계학, 물리학 및 기타 Quantitative research하는 전공자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가장 최근에 삼성에서 영입한 AI 최고 전문가라는 분의 박사 전공도 물리학이더라.

언론 플레이는 잘 먹혀들어가서, 정부나 대기업이 발주하는 AI프로젝트는 컴퓨터 공학과에 배정되고, 수알못인 개발자들은 (으레 그랬듯이) Library 구해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결과물로 프로젝트 발표를 진행한다. 수리통계학 훈련으로 박사 공부를 한 사람들이 받는 연봉을 학부 수학도 모르는 개발자들이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하고, 심지어 수알못 공학 박사들에게 그런 연봉을 주는 기관도 많다. 공학 박사 했으니까 잘하겠지라는 믿음의 폐해다.

딱 여기까지가 MBA 붐이 일어나던 2000년대 초반과 동일한 상황이다. 근데 정말 그들이 실체없는 MBA같은 지식을 갖고 있는게 맞냐? 그게 보장되어야 ‘공대 = 이과의 경영학과’라는 공식이 성립할 것 아닌가?

공대 = 이과의 경영학과 (Little 수학, Heavy 몸빵)

이미 파비블로그에서 데이터 사이언스는 철저하게 수리통계학에 기반한 계산통계학 방법론이라는 걸 수십번도 더 논증했고, 부족하나마 수업도 운영하면서 300명에 가까운 졸업생을 만들어냈다.

수업을 듣고 간 학생들 중 일부는 지도교수가 자기보다 더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석사 연구실을 뛰쳐나오기도 했고, 유학가야겠다면서 GRE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나 연구기관 소속의 연구원들은 몰랐을 때는 코드나 돌려서 사기쳐도 민망함이 덜했는데, 이젠 사기도 못치겠다, 제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걸 절감해서 괴롭다는 분들도 있었다. 교수진들이 파비클래스 수업을 거쳐가면서 챙겨간 강의 노트와 파비클래스에서 제공했던 직관적인 이해가 수업에 쓰였는지 “저희 교수님이 파비블로그 보라고 하셨어요”라는 메일을 보내주는 이름없는 학생들도 있었다.

MBA나 공대 카르텔이 몇 백억씩의 홍보비를 쓰는 것 같은 거창한 작업을 할 능력은 없지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두드리면 거짓으로 쌓아올린 성이 무너지지 않을까는 작은 기대를 갖고 강의를 시작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이 몰라서 외면하고 있는 지식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수강생들이 다시 회사에 돌아가서 답답한 소리나하는 수알못 보스들에게 절망의 벽을 느껴야하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했었다. 그러다 이번 사이클에 강의 후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더라.

(Source: Lord of the Rings, The final battle)

수학, 통계학, 물리학 출신의 대반격

조용히 자기 연구만 하는 수학, 통계학, 물리학 출신들이 시장에서 요구하는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고 있는 중이었다. 교수진들은 ‘수리통계학 같은 Elegant한 학문이 아니어서 무시했던’ 데이터 마이닝 지식을 쓱~ 한번 훑어보고 정리해서 강의를 개설하고 있기도 하고, 학생들도 ‘배워보니 별거없네’라는 생각으로 데이터 사이언스를 깊게 파 들어가고 있었다.

Neural Net을 블랙박스라고 우기길래 파비블로그 초창기에 Weighting matrix 만드는거 직접 다 계산할 수 있는데 무슨소리냐는 코드를 올려놨더니, 그 글을 보고 직접 계산도 해보고, 하나하나 추적해보면서 Neural Net이 단순히 Nesting 계산에 불과하다는걸 이미 학부생들도 다 알고 있는 상황이라는 답변을 들으니 정말 뿌듯하더라. (사실 이거 석사 1학년 수업의 Problem set 중에 하나에 불과한 지식이다.)

저런 지식을 ‘설명가능한 AI’라고 과대포장해서 마치 어마어마한 연구를 하는 스타트업인 것처럼 뻥을치고 수십억 투자금을 받는 회사가 오늘은 사람들을 속일 수 있겠지만, 훈련받은 학부생들이 시장에 쏟아져나오는 2-3년 후가 되면 더 이상 지금처럼 쉽게 시장을 속이기는 힘들 것이다.

여전히 수학없이 버티는 AI사단

바뀌고 있다는 정보에 참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공대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더라. 연구실에 배정받아서 박사 2년차한테 책 좀 추천해달라고하니 Github에 있는 코드 왕창 베껴서 만든 코딩 책 하나 추천해줬다면서, 그거보면 되냐고 묻는 어느 초명문 공대생에게 그거말고 Stochastic optimization 제대로 하는 책 찾아서 봐야 내공이 쌓인다고 알려주는 내내 참 씁쓸했다.

그동안 공학 박사들 만나 본 경험상, 그 연구실의 교수도 Stochastic optimization 문제를 손도 못 대는 수준일 것이다. 알았으면 자기 연구실 박사과정 생을 그렇게 내버려두진 않았겠지. 자기가 책임져야하는 학생인데. 최소한 그 논리를 알아야 상황에 맞춰 자기 모델을 변형하고, 그 바뀐 모델에 맞는 코드를 짜서 연구도 하고, 프로젝트도 할 수 있을텐데, 공학 학,석,박 과정 내내 수학을 거기까지 공부해 본 적이 없으니 알 턱이 있으랴.

전공 상황이 이러니까 학부생들이 박사 연구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걸 인지를 못하는거다. 70-80년대 사회과학처럼 방법론이라는 측면에서 학,석,박 과정의 차이가 거의 없으니 느끼질 못하겠지. 코드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표현하는 언어에 불과하건만.

경영학과에서 수학 공부를 끝판왕으로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파이낸스(minus 기업재무), 요구 수준이 높은 생산관리 등의 몇몇 세부 전공을 빼면 나머지 경영학 박사과정은 대부분 20세기 사회학 박사들이 쓰는 연구 방법론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속칭 ‘이빨까는 방법론’이다. 공대에서도 수학 공부를 제대로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몇몇 세부 전공을 빼면 나머지 공학 박사과정은 대부분 개발자 수준의 코딩 삽질이 자기네 연구 방법론이더라.

요즘은 사회학, 정치학, 법학 박사들도 경제학 논리를 설명하는 수학, 통계학을 학문의 도구로 삼고 있다. 사회학 방법론을 갖다 쓰던 경영학의 몇몇 세부전공 박사 과정도 지난 10년 사이에 크게 바뀌었다. Legacy처럼 남은 노땅 교수들이 아직 학교에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학문적인 성장을 일궈내는 사람들이 아니다. 경제학이 1980년대에 ‘이빨까는 방법론’을 가진 사람들을 메인 스트림에서 몰아내고 영국 캠브리지, SOAS 같은 학교로 퇴출시켜버린 것처럼, 다른 사회과학들이 2010년대를 그렇게 보내는 것을 목도했다.

수학없이 AI 전문가 타이틀을 달고 있는 몇몇 공학 세부전공이 ‘코드치는 곳’이 아닌 ‘연구를 하는 곳’이 되고 싶으면 비슷한 물갈이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수학과, 통계학과, 물리학과 출신들이 시장에 진입하고 메인 스트림이 되는 시점이 되면 그런 공학 전공 짝퉁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은 쫓겨나거나,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서 내부적인 물갈이를 할 수 밖에 없겠지. 개혁을 위한 최고의 명약은 외부 충격이다.

당장 우리 회사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채용할 때 공학도 출신이면 경영학과 출신이라고 생각하고 아주아주아주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면 이력서 광탈일 것이다.

(Source: StarWars, Rogue One)

나가며 – 조금씩 커져가는 희망

우리 회사에 초창기 개발 멤버 중 시니어 한 분은 2년차 신입 개발자에게도 무시 당할만큼 실력이 없는 분이었다. 유명 대기업 장기 근속하신 40대 중반 개발자였는데, 열심히 공부해와서 개발 이야기 몇 마디 해보니 왜 무시당했는지 알겠더라. 채용 실패를 인정하고 빠른 속도로 해고 조치를 밟았다. 대기업 출신은 바보일 확률이 높다는 명제에 대한 귀납적 증명 사례 중 하나라고 할만할듯. 해고를 하면 회사가 여러가지로 피해를 볼 줄은 알지만, 그래도 2년차 신입 개발자에게도 무시 당할만큼 실력없는 개발자를 높은 포지션에 놔둘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다 힘들게 뽑은 2년차 신입 개발자가 ‘대표가 내 위에 바보 뽑아놔서 일하기 졸라 짱남’이라고 후기 남기고 나가버릴 것 같더라. 두려웠었다. 나도 바보랑 일하는게 죽기보다 싫어서 박사 유학갔고, 창업했기 때문이니까.

AI라고 우기는 데이터 사이언스 시장도 조만간 그렇게 변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자연대 학부 고학년들이 이미 Neural Net이 돌아가는 방식을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데, 그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해서 만나는 자기 보스의 실력을 보게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팀장급이 무능해서 부하직원에게 무시당하고 있는걸 보고 있는 윗선에서는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까? 정치질만 열심히해도 버틸 수 있는 썩은 조직이 아니라면 그런 무능한 중간 책임자는 파비에서 그랬듯이 빠른 속도로 책상을 빼야할 것이다.

시장이 외면하는 지식을 공부해라고 계속 강조하는 블로그와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으면서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는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언제쯤 시장을 바꿀 수 있을까? 바꿀 수 있기는 한걸까? 심지어 명문공대가 우리 회사 이름까지 가로채서 자기네 강의 팔아먹는데? 공대 카르텔이 날 잡아먹는게 먼저이지 않을까? 같은 두려움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일선 학교에 계신 양식있는 자연대 교수님들이 늦지 않게 뛰어난 인재들을 2-3년 후부터 시장에 배출해주실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그런 두려움은 이제 잊어도 될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파비클래스에서 가르치는 지식이 전문 지식이 아니라 교양 수준의 지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모두가 사기꾼을 알아볼 수 있는 세상이 빨리오면 얼마나 좋을까?